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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상과 김부식에 관한 설화

 
 시중 김부식과 학사 정지상은 문장으로 같은 시대에 똑같이 유명하였는데 두 사람은 서로 알력이 있어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세상에 이와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정지상이 "절에서 독경소리 끝나자 / 하늘은 유리인 양 맑구나"라는 시구를 지었는데 김부식이 이 시구를 좋아하여 달라고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정지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뒤에 정지상은 김부식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 뒤 정지상은 귀신이 되었다.

 김부식이 하루는 봄은 읊을 시를 지어 "버들 빛은 천 갈래로 푸르고, 복사꽃은 일만 점으로 붉도다"라고 했다. 문득 공중에서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의 뺨을 때리며 "천 갈래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보았으냐 왜 '버들 빛은 갈래갈래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도다'라고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김부식이 마음속으로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김부식이 후에 어떤 절에 가서 우연히 측간에 올랐는데 문득 뒤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음낭을 잡아당기며 "술도 마시지 않았거늘 어째서 얼굴이 붉은가?"라고 묻자 김부식이 천천히 "저 건너 언덕의 단풍이 얼굴에 비쳐서 붉지"라고 답했다. 정지상 귀신이 불알을 꽉 움켜잡으며 "이것이 어떤 놈의 가죽 주머니이지?"라고 말하자 김부식이 "네 아비 불알은 쇠불알이냐"고 답하면서 낯빛을 바꾸지 않았다. 정지상의 귀신이 불알을 더욱 힘주어 잡아서 김부식이 결국에는 측간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규보, 『백운소설』 中

 재밌는 이야기지요? '송인'이라는 시로 유명한 정지상과 '삼국사기'로 유명한 김부식은 여러모로 상반된 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신부터 서경과 개경으로 나뉘었고, 정지상 등이 주장한 칭제건원론과 서경천도론을 김부식은 반대했지요. 혹자는 김부식의 이런 정치적 견해를 주체성을 상실한 사대주의자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김부식을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기는 힘들고, 현실적인 면을 중시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지상과 김부식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두 사람이 문학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바도 꽤나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김부식에게 있어 문학이란 (삼국사기에서 얼핏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군주를 권계하고 도덕적 가치를 선양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지상은 왠지 현실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시를 남겼지요. <한국고전문학작가론>을 보면 이를 '김부식이 유가적 엄숙함을 견지하는 시적 태도를 보였다면 정지상은 도가적 초월을 지향한 태도를 보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네요. 실제로 시를 보면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결기궁(結綺宮) - 김부식

 요 임금의 궁궐이 계단 삼척으로 낮았어도,
 천년토록 그 덕이 남아 전하고
 진나라 성 만리나 길었지만은
 이세 때에 그 나라를 잃어버렸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역사 속에서
 충분히 본보기가 될 수 있는데
 수양제는 어찌하여 생각 못하고
 토목 일로 백성 힘을 고갈시켰나.


 제변산소래사(題邊山蘇來寺) - 정지상

 적막한 옛길에 솔뿌리 얽혀 있고
 하늘이 가까워 북극성 손에 잡힐 듯
 뜬구름 흐르는 물 따라 나그네 절에 이르니
 붉은 잎 푸른 이끼 속에 문 닫은 스님
 가을 바람 쌀쌀하게 해질녘에 불어오고
 산달은 조금씩 환해지는데 원숭이는 맑은 울음 우네
 기이하구나 눈썹 긴 늙은 스님 한 분
 오랜 세월 번거로운 인간사를 꿈도 꾸지 않는다네.


 쓸데없는 뱀발. 김부식의 '결기궁'을 지금의 높은 분한테 보여주고 싶으면 이상한 걸까요…….

by 아침의전령 | 2009/07/29 17:00 | 개인적인 공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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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야소피아 at 2009/07/30 00:24
참 흥미롭군요.. 그리고 위 설화의 출처를 알려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아침의전령 at 2009/07/30 00:49
이규보 백운소설에 한문 원문으로 있고요 'ㅁ'/ 저는 <한국고전문학작가론>에서 번역된 걸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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