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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 김영랑

 
 1
 큰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마음이 그리도 독했든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든 교만한 눈
 그는 옛날 성학사 박팽년이
 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었었니라
 오! 일편단심

 2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 첫날 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모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 어린춘향을 꼭 안어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단심

 3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이 무엇이기
 그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하단 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의
 흉칙한 얼굴에 까물어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

 4
 상하고 멍든 자리 마듸마듸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

 5
 깊은 겨울밤 비ㅅ바람은 우루루루
 피칠해논 옥창살을 드리치는데
 옥죽엄한 원괴寃鬼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청절 춘향도 혼을 잃고 몸을 버러버렸다
 밤 새도록 까물어치고
 해 돋을녁 깨어나다
 오! 일편단심

 6
 믿고 바라고 눈아프게 보고 싶든 도련님이
 죽기전에 와주셨다 춘향은 살었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된 춘향이 보고
 이도령은 잔인스레 웃었다 저 때문의 정절이 자랑스러워
 「우리집이 팍 망해서 상거지가 되었지야」
 오! 일편단심

 7
 모진 춘향이 그밤 새벽에 또 까물어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뵈어 한을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조 끊기고
 왼몸 푸른 맥도 홱 풀려 버렸을법
 출도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卞哥보다 잔인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

 
 개인적으로는 춘향전 원작보다 이 작품이 더욱 마음에 들어요. 고전으로서 어마어마한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원작에 대한 반발심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그것보다 원작에 나오는 이도령의 모습이 싫어서랍니다. 암행어사가 되었으면 그냥 쳐들어 와서(…) 춘향이를 구출하면 되는 거지, 굳이 거지 분장까지 해 가며 춘향이에게 실망을 안긴 뒤에 구출을 해야만 했는지.
 
 뭐, 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실상 자신이 춘향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씁쓸하고도, 또 씁쓸한 일이지요. 뭐랄까, 왠지 이도령이 굳이 춘향의 정절, 혹은 절개를 확인하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더군다나 김영랑 시처럼 그 짧은 순간 동안 춘향이 죽어버리면 어쩐다 하는 고민은 없었는지.

 비록 춘향전이 '기생인 춘향을 인간으로 보았다'고 해서 '근대적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그 인간이라는 게 '정절을 지켜야만' 하는 존재라면, '일편단심에 목숨을 걸어야만'하는 존재라면 그게 정말 해방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무언가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 때문에라도 김영랑의 작품이 원작보다 좋답니다.

by 아침의전령 | 2009/10/16 11:47 | 개인적인 공부 | 트랙백 | 덧글(0)

2009.8.30.

 
 1. 내일이면 개강이군요. 좋았던, 그리고 놀기만 했던 방학은 다 가고, 우직하게 공부만 해야하는 시절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기분이네요. 우아아, 진짜 개강이라니. 그런 게 이렇도록 갑작스럽게 닥쳐 올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이하여 개강은 이리도 도둑처럼 오는 것일까요.

 2. 영화 <Up>을 보고 왔습니다. 펑펑 울 만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가슴 찡한 무언가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3. 내일부터 아침 7시에 일어나자! 고 계획은 세워뒀는데, 제대로 실천할지는 의문이네요. 저번 학기엔 맨날 9시 수업이면, 8시 혹은 8시 30분쯤에 일어나 급히 머리 감고 학교로 달려가곤 했는데……. 왠지 이번 학기도 그럴 것 같아서 불안불안.

 4. 슬슬 실습 준비도 해야하는데 말이죠. 원래 방학 때 실습복을 사러 갈 계획이었으나, 어찌하다보니 무산. 며칠 전에 비만 내리지 않았어도 옷을 사러 상경하는 거였는데……. 덕분에 옷은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싸게 사야할 텐데 말이죠.

 5. 최근 선배가 추천해준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시리즈를 읽고 있는데, 역시랄까, 문학가들은 참 괴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맨날 술을 마시고, 걸음이 비틀비틀하다고 호를 '횡보'라고 지은 염상섭이나, 명동 거리에 서서 '술은 결코 얻어 먹지 않지만', '돈을 얻어 그 돈으로 술을 마시는' 천상병이라거나. 이상이 김유정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재미있어요. '문학'을 통해서만 고정된 '작가'의 이미지를 넘어서, 작가들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들은 그 작가들에게 한층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아요.

 6. 날씨가 추워졌군요. 감기 조심하세요. 감기라도 걸리면 신종플루 환자 취급 당할까봐 무서운 세상이니까요.

by 아침의전령 | 2009/08/30 22:47 | 일상 헛소리 | 트랙백 | 덧글(0)

브이 포 벤데타 - 영웅 이야기였기에 약간 아쉬운

 
 소문이 자자했던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를 이제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 영화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유달리 회자되는 이유도 얼핏 느낄 수 있었지요.

 브이 포 벤데타의 무대가 되는 곳은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차이'가 '차별'로 전락한 사회라고나 할까요. '동성애자'나 '코란'처럼 집권자의 사상에 어긋나는 것들과 관련된 사람들은 용납없이 '처형'됩니다. 거기다가 '방송'은 통제되어 집권자가 원하는 내용을 담은 조작된 뉴스만이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런 걸 보면서, 저걸 누가 믿어? 하는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희망'은 이어질 수 있었지만요.)

 그런 통제되고, 억압된 사회에 V는 말 그래도 '영웅'처럼 나타납니다. 그는 집권자의 억압을 대변하는 성벽이라는 상징물을 부수며 화려하게 등장해, 그 후 1년 뒤 봉기까지 '거의 혼자서' 모든 일을 착착 진행시켜 나갑니다. 물론 이런 시원한 전개는 참으로 속이 풀리긴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어떤 영웅이 등장해, 오래된 폐습이건,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잘못된 정책이건 다 무너뜨려 버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만큼요.

 하지만 그것이 현실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V의 영웅적인 활동은 하나의 공허한 판타지, 혹은 영웅담에 그쳐버리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현실이 너무도 부정적일 때 영웅담은 성행을 합니다. 실제로 우리도 일제 시대에 '이태리건국삼걸전'이니 '애국부인전'이니 '을지문덕', '이순신전', '천개소문전' 등 많은 영웅담이 난립했지요. 하지만 근대에 와서는 한 명의 인물이 아무리 뛰어나니 어쩌니 해도, 근대를 이루고 있는 무수히 많은 부분에 나타나는 모순을 혼자서 해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죠. 시대를 이루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변화는 있기가 힘들달까요. 그런 점에서 V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웅적인 행위가 조금은 공허하게 비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좀 아쉬웠던 걸 찾자면, (위의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아무리 봐도 민중, 혹은 소시민을 상징하는 듯한 이비를 '계몽'하는 것이 거의 V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많은 사람들이 영화 말미에 거리로 나와서 군대를 향해 걸어가는 것도, V가 없었으면 행해졌을까 하는 느낌마저 들지요.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집권자가 독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그 모순 자체에서 비롯되었기는 했지만, 모순을 인식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V의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아서 아쉽달까요. 정리하자면, 개인적으로 원했던 풍경은 V가 없어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필연성을 원했달까요. (뭐, 그렇게 되었다면 잘 표현하지 않는 이상 현실성이 더욱 떨어질 수도 있었겠지만서도요.)

 계속 아쉬운 점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 영화를 볼 때는 무지 즐겁게 보았답니다. 여러 모로 현재 우리 상황에 겹치는 이야기도 많고, 마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연상시키는 그 전개도 퍽 재밌었고요.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몰려나왔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답니다. (전 무기력하고 약하게만 보였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대규모로' 움직이는 것에서 이상할 정도로 장엄함을 느낀답니다.)

 별로 상관없는 뱀발) 'Up'을 보고 싶었는데, 주변에 있는 상영관에는 전부 내려서 볼 수가 없군요. 흑.

by 아침의전령 | 2009/08/21 17:21 | 가끔 보는 영상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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