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6일
춘향 / 김영랑
1
큰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마음이 그리도 독했든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든 교만한 눈
그는 옛날 성학사 박팽년이
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었었니라
오! 일편단심
2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 첫날 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모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 어린춘향을 꼭 안어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단심
3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이 무엇이기
그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하단 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의
흉칙한 얼굴에 까물어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
4
상하고 멍든 자리 마듸마듸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
5
깊은 겨울밤 비ㅅ바람은 우루루루
피칠해논 옥창살을 드리치는데
옥죽엄한 원괴寃鬼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청절 춘향도 혼을 잃고 몸을 버러버렸다
밤 새도록 까물어치고
해 돋을녁 깨어나다
오! 일편단심
6
믿고 바라고 눈아프게 보고 싶든 도련님이
죽기전에 와주셨다 춘향은 살었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된 춘향이 보고
이도령은 잔인스레 웃었다 저 때문의 정절이 자랑스러워
「우리집이 팍 망해서 상거지가 되었지야」
오! 일편단심
7
모진 춘향이 그밤 새벽에 또 까물어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뵈어 한을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조 끊기고
왼몸 푸른 맥도 홱 풀려 버렸을법
출도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卞哥보다 잔인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
개인적으로는 춘향전 원작보다 이 작품이 더욱 마음에 들어요. 고전으로서 어마어마한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원작에 대한 반발심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그것보다 원작에 나오는 이도령의 모습이 싫어서랍니다. 암행어사가 되었으면 그냥 쳐들어 와서(…) 춘향이를 구출하면 되는 거지, 굳이 거지 분장까지 해 가며 춘향이에게 실망을 안긴 뒤에 구출을 해야만 했는지.
뭐, 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실상 자신이 춘향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씁쓸하고도, 또 씁쓸한 일이지요. 뭐랄까, 왠지 이도령이 굳이 춘향의 정절, 혹은 절개를 확인하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더군다나 김영랑 시처럼 그 짧은 순간 동안 춘향이 죽어버리면 어쩐다 하는 고민은 없었는지.
비록 춘향전이 '기생인 춘향을 인간으로 보았다'고 해서 '근대적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그 인간이라는 게 '정절을 지켜야만' 하는 존재라면, '일편단심에 목숨을 걸어야만'하는 존재라면 그게 정말 해방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무언가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 때문에라도 김영랑의 작품이 원작보다 좋답니다.
큰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마음이 그리도 독했든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든 교만한 눈
그는 옛날 성학사 박팽년이
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었었니라
오! 일편단심
2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 첫날 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모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 어린춘향을 꼭 안어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단심
3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이 무엇이기
그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하단 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의
흉칙한 얼굴에 까물어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
4
상하고 멍든 자리 마듸마듸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
5
깊은 겨울밤 비ㅅ바람은 우루루루
피칠해논 옥창살을 드리치는데
옥죽엄한 원괴寃鬼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청절 춘향도 혼을 잃고 몸을 버러버렸다
밤 새도록 까물어치고
해 돋을녁 깨어나다
오! 일편단심
6
믿고 바라고 눈아프게 보고 싶든 도련님이
죽기전에 와주셨다 춘향은 살었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된 춘향이 보고
이도령은 잔인스레 웃었다 저 때문의 정절이 자랑스러워
「우리집이 팍 망해서 상거지가 되었지야」
오! 일편단심
7
모진 춘향이 그밤 새벽에 또 까물어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뵈어 한을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조 끊기고
왼몸 푸른 맥도 홱 풀려 버렸을법
출도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卞哥보다 잔인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
개인적으로는 춘향전 원작보다 이 작품이 더욱 마음에 들어요. 고전으로서 어마어마한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원작에 대한 반발심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그것보다 원작에 나오는 이도령의 모습이 싫어서랍니다. 암행어사가 되었으면 그냥 쳐들어 와서(…) 춘향이를 구출하면 되는 거지, 굳이 거지 분장까지 해 가며 춘향이에게 실망을 안긴 뒤에 구출을 해야만 했는지.
뭐, 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실상 자신이 춘향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씁쓸하고도, 또 씁쓸한 일이지요. 뭐랄까, 왠지 이도령이 굳이 춘향의 정절, 혹은 절개를 확인하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더군다나 김영랑 시처럼 그 짧은 순간 동안 춘향이 죽어버리면 어쩐다 하는 고민은 없었는지.
비록 춘향전이 '기생인 춘향을 인간으로 보았다'고 해서 '근대적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그 인간이라는 게 '정절을 지켜야만' 하는 존재라면, '일편단심에 목숨을 걸어야만'하는 존재라면 그게 정말 해방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무언가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 때문에라도 김영랑의 작품이 원작보다 좋답니다.
# by | 2009/10/16 11:47 | 개인적인 공부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