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02일
우리 소설의 시초, 전기소설
'이야기'와 '이야기와 거리를 두고 있는 화자'를 지닌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서사라는 갈래는, 크게 '설화'와 '소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화와 소설의 구분은 단순하게 하자면 '표현매체'의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비문학 '설화'와 글로써 쓰여진 '소설'.
하지만 글로 기록된 설화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분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품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설화와 소설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조동일이나 박희병의 글에서 찾을 수 있으나, 머리가 아픈 이야기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100% 납득하는 결론이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설화와 소설 구분짓기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작품이 '최치원'입니다. 불운했던 육두품 지식인 최치원의 고독과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을 과연 설화로 볼 것인가, 소설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만약 '최치원'을 소설로 인정하게 된다면 한국 최초의 소설은 조선 시대의 '금오신화'가 아니라, 신라 말~고려 초의 '최치원'이 됩니다. 여담이지만, 만약 최치원이 소설로 인정이 된다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10세기 전후에 소설이 등장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우리도 소설을 창작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요.
사실 최치원은 전기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특징을 많이 지녔습니다. '고독한 주인공', '시를 통한 내면의 제시', '현실에서는 성취될 수 없는 행복' 등은 금오신화의 여러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지요.
뜬 구름 같은 세상의 영화는 꿈 속의 꿈이니
하얀 구름 자욱한 곳에서 이 한 몸 깃들리라.
최치원의 줄거리는 퍽 단순합니다. 당나라에 유학을 가 있던 최치원이 두 사람의 여인이 묻혀있는 쌍녀분에서 시를 짓습니다. 그 시 덕분에 최치원은 무덤 속의 두 여인과 만나 하룻밤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고, 동이 터옴과 동시에 이별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치원은 이별의 슬픔을 안고, 고국에 돌아온 후 속세를 떠나게 되지요.
귀신과 사랑을 나누고, 이별 후 허무함에 속세를 떠난다는 구조는 금오신화의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개 귀신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정말 행복한 시간으로 그리지요. 허나, 이는 바꾸어 말하면 귀신과 지냈을 때밖에 행복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소설들의 주인공이 속세를 등지는 것은, 속세로 칭할 수 있는 현실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전기소설의 주인공이 속세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은 전기소설의 작자가 대개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이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금오신화를 지은 김시습은, 정치권력에서 멀어져 홀로 방황하는 '방외인'의 대표주자였습니다. 5세 때 세종 앞에서 시를 지으며 천재적인 면모를 보여 '오세'라고 불리기도 하던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관직으로 나가고자 하는 뜻을 버리고 승의 길을 걷습니다. (물론 인생 중간중간에 속세로 돌아오고자 하는 시도도 몇 번 했습니다. 당대의 권신이었던 서거정에게 은근히 벼슬을 구걸하기도 했지요. 허나, 그의 인생은 결국 방외인으로서 끝이 났습니다.)
마음이 세사와 상반되니 시를 빼놓으면 즐길 것이 없다
당당히 정치 현실에 나아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하는 꿈이 좌절되었을 때, 자신이 바라마지 않던 세계가 붕괴되었을 때, 김시습이 느낀 고독은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그런 고독 속에서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줄 사람"을 기다리며 지은 금오신화에는, 김시습의 고독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이는 6두품의 신분이었던 최치원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감정입니다. 비록 최치원이 직접 '최치원'을 지은 것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 '최치원'을 지었을 거라고 생각해보면, 세상과의 어긋남을 얼마나 느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고독한 사람들이, '고독한 주인공'을 만들어 내고, 그 고독한 주인공은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읊으며, '환상' 속에서만 자신을 알아주는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귀신이건, 용왕이건, 염라왕이건 말이지요.
이런 전기소설의 모습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약간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후기 전기소설이라 불리는 '운영전', '최척전', '주생전' 등은 '기이함'이라는 성질이 옅어짐과 동시에 각각 기존의 전기소설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운영전에서는 '특'이라는 간악한 노비가 등장함으로써 부정적 인물의 출현을 고했고, 최척전에서는 네 개 국가를 무대로 하여 배경의 확대를 보여주었으며, 주생전에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해서 전기소설의 맥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다양한 갈래의 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합니다. 영웅소설, 가정소설, 우화소설, 가문소설, 몽자류 소설, 몽유록계 소설, 판소리계 소설 등등 나누자면 무수히 많이 나누어질 만큼 많은 종류의 소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영웅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인데요,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포스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는 자이기에
진채(陳蔡)의 사이에 바쁜 것인가?
가는 곳곳 대부분 뜻에 안 맞아
마음과 일 더더욱 서로 걸린다.
장안 길에 구름 아득하고
월협 여율에 바람 휘감아 돈다.
유유한 하늘과 땅 사이에
누가 백구처럼 한가하겠나?
김시습, 무엇을 하려는가(何爲)
하지만 글로 기록된 설화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분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품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설화와 소설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조동일이나 박희병의 글에서 찾을 수 있으나, 머리가 아픈 이야기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100% 납득하는 결론이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설화와 소설 구분짓기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작품이 '최치원'입니다. 불운했던 육두품 지식인 최치원의 고독과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을 과연 설화로 볼 것인가, 소설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만약 '최치원'을 소설로 인정하게 된다면 한국 최초의 소설은 조선 시대의 '금오신화'가 아니라, 신라 말~고려 초의 '최치원'이 됩니다. 여담이지만, 만약 최치원이 소설로 인정이 된다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10세기 전후에 소설이 등장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우리도 소설을 창작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요.
사실 최치원은 전기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특징을 많이 지녔습니다. '고독한 주인공', '시를 통한 내면의 제시', '현실에서는 성취될 수 없는 행복' 등은 금오신화의 여러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지요.
뜬 구름 같은 세상의 영화는 꿈 속의 꿈이니
하얀 구름 자욱한 곳에서 이 한 몸 깃들리라.
최치원의 줄거리는 퍽 단순합니다. 당나라에 유학을 가 있던 최치원이 두 사람의 여인이 묻혀있는 쌍녀분에서 시를 짓습니다. 그 시 덕분에 최치원은 무덤 속의 두 여인과 만나 하룻밤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고, 동이 터옴과 동시에 이별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치원은 이별의 슬픔을 안고, 고국에 돌아온 후 속세를 떠나게 되지요.
귀신과 사랑을 나누고, 이별 후 허무함에 속세를 떠난다는 구조는 금오신화의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개 귀신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정말 행복한 시간으로 그리지요. 허나, 이는 바꾸어 말하면 귀신과 지냈을 때밖에 행복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소설들의 주인공이 속세를 등지는 것은, 속세로 칭할 수 있는 현실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전기소설의 주인공이 속세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은 전기소설의 작자가 대개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이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금오신화를 지은 김시습은, 정치권력에서 멀어져 홀로 방황하는 '방외인'의 대표주자였습니다. 5세 때 세종 앞에서 시를 지으며 천재적인 면모를 보여 '오세'라고 불리기도 하던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관직으로 나가고자 하는 뜻을 버리고 승의 길을 걷습니다. (물론 인생 중간중간에 속세로 돌아오고자 하는 시도도 몇 번 했습니다. 당대의 권신이었던 서거정에게 은근히 벼슬을 구걸하기도 했지요. 허나, 그의 인생은 결국 방외인으로서 끝이 났습니다.)
마음이 세사와 상반되니 시를 빼놓으면 즐길 것이 없다
당당히 정치 현실에 나아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하는 꿈이 좌절되었을 때, 자신이 바라마지 않던 세계가 붕괴되었을 때, 김시습이 느낀 고독은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그런 고독 속에서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줄 사람"을 기다리며 지은 금오신화에는, 김시습의 고독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이는 6두품의 신분이었던 최치원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감정입니다. 비록 최치원이 직접 '최치원'을 지은 것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 '최치원'을 지었을 거라고 생각해보면, 세상과의 어긋남을 얼마나 느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고독한 사람들이, '고독한 주인공'을 만들어 내고, 그 고독한 주인공은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읊으며, '환상' 속에서만 자신을 알아주는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귀신이건, 용왕이건, 염라왕이건 말이지요.
이런 전기소설의 모습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약간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후기 전기소설이라 불리는 '운영전', '최척전', '주생전' 등은 '기이함'이라는 성질이 옅어짐과 동시에 각각 기존의 전기소설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운영전에서는 '특'이라는 간악한 노비가 등장함으로써 부정적 인물의 출현을 고했고, 최척전에서는 네 개 국가를 무대로 하여 배경의 확대를 보여주었으며, 주생전에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해서 전기소설의 맥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다양한 갈래의 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합니다. 영웅소설, 가정소설, 우화소설, 가문소설, 몽자류 소설, 몽유록계 소설, 판소리계 소설 등등 나누자면 무수히 많이 나누어질 만큼 많은 종류의 소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영웅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인데요,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포스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는 자이기에
진채(陳蔡)의 사이에 바쁜 것인가?
가는 곳곳 대부분 뜻에 안 맞아
마음과 일 더더욱 서로 걸린다.
장안 길에 구름 아득하고
월협 여율에 바람 휘감아 돈다.
유유한 하늘과 땅 사이에
누가 백구처럼 한가하겠나?
김시습, 무엇을 하려는가(何爲)
# by | 2011/10/02 23:10 | 문학사 | 트랙백 | 덧글(0)




